차례상에 홍동백서(紅東白西), 역사적 근거 없다
팩트체크 결과
접기[요약]
- 홍동백서, 알고보니 역사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주장이 있음.
- 유학 관련 단체에서도 홍동백서의 역사성 부정함.
- 홍동백서, 일제강점기 이전에 등장한 적 없음.
- 홍동백서는 역사적 근거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남.
[검증 대상]
진설법에서 홍동백서는 역사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온라인 커뮤니티 의견들
[검증 방법]
홍동백서가 등장하는 학술 논문 검토
한국유교문화진흥원 연구원 인터뷰
[검증 내용]
민족 최대의 명절 설이 다가오면서 차례(茶禮)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고된 가사노동으로 유발되는 갈등과 해마다 폭등하는 물가로 차례상을 간소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홍동백서(紅東白西)나 조율이시(棗栗梨枾) 등과 같은 제사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꾸준하게 제기되고 있다.
▲지난 16일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와 성균관유도회총본부, 한국유교문화진흥원이 설 차례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한국유교문화진흥원 제공)
홍동백서란 제사(祭祀)나 차례상에 붉은 과일을 동쪽에, 흰 과일을 서쪽에 놓는 방법을 말한다. 복잡한 진설(陳設, 제사상 차리는 방법)법 중에서도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규칙이다. 제사와 차례를 지내는 가정이라면, 명절상을 가득 채운 과일들이 익숙할 것이다. 그런데 수년 전부터 온라인상을 중심으로 홍동백서의 역사적 근거가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진실은 무엇일까.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운영하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차례는 설과 같은 명절에 지내는 약식 제사를 지칭한다. 제사는 신령에게 음식을 바치며 기원하거나, 죽은 사람을 추모하는 의식을 뜻한다. 우리 민족은 조선시대 때부터 ‘가례(家禮)’를 기본 삼아 제사와 차례를 지냈다. 가례는 중국 남송의 성리학자 주희의 저서로 알려져 있으며, 중요한 유교 행사 규칙들이 담겼다. 조선시대 많은 유학자들은 가례를 해석하는 저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홍동백서가 가례를 포함해 어떠한 유교 고문헌에도 등장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와 성균관유도회총본부, 한국유교문화진흥원은 지난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예법을 다룬 문헌에 홍동백서나 조율이시라는 표현은 없다”며 “명절 차례상에는 과일은 4~6가지를 편하게 놓으면 된다”고 강조했다.
(사진=뉴시스)
홍동백서의 기원은?
홍동백서라는 정체불명의 단어는 어디서 도대체 유래한 것일까. 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연구원이 2016년 발표한 논문 ‘놀이판 습례국에 나타난 1910년대 한글 사용과 제례문화’에 따르면 1926년 김동진이 쓴 ‘언문상례(諺文喪禮)’에 “실과상을 올리나니 홍색은 동편이오 백색은 서편이오”라는 문장이 있다. 홍동백서라는 과일 차림을 제시한 것으로, 적어도 일제강점기 당시에는 홍동백서라는 말이 쓰였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논문에 따르면 1969년 문화공보부가 발표한 ‘한국민속종합보고서 제1편 전라남도편’을 보면 진설법에 대해 설명하면서 “홍동백서 등은 상식으로 알고 있다”고 적혀있다.
김시덕 연구원은 “제사상차림을 기억하기 좋게 사자성어처럼 만든 진설법이 구전되다가 1968년도 전남 지역의 민속조사에서 발견돼 다양한 방법이 기록됐을 것이다”며 “이후 보고서에서 반복적으로 이 같은 사자성어가 나왔고, 조사 과정에서 조사자로부터 역으로 현장에 전파됐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종합해 보면 홍동백서는 일제강점기와 같은 비교적 멀지 않은 과거에 구전되다가 상식처럼 굳어진 게 아니냐는 추정을 할 수 있다. 채 200년도 되지 않은 진설법이 정부의 민속 조사 과정에서 우리의 고유 전통처럼 잘못 알려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조선시대에는 적어도 제사나 차례상에 홍색 과일을 동쪽에, 백색 과일을 서쪽에 놓는 방법을 고집하지 않았다는 것이 핵심이다.
조지선 한국유교문화진흥원 연구원은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홍동백서의 정확한 기원은 성균관유도회에서도 ‘알 수 없다’라고 보고 있다. 성리학의 대표적 사상서인 주자가례에서도 홍동백서는 나오지 않는다”며 “조선시대 퇴계 이황은 오히려 설 차례상을 술과 떡국, 약간의 과일 정도로 간소하게 차리라고 했다. 제사상의 경우 이보다는 가짓수가 많다”고 설명했다.
[검증 결과]
사실. 홍동백서는 역사적인 유교 문헌에는 나오지 않는다. 비교적 최근 구전으로 내려온 문화일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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