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질은 천성, 바꿀 수 없다…소심한 아이는 과보호 말라”
‘우리 아이는 어떤 기질일까?’
영유아를 키우는 부모들이 흔히 갖는 궁금증입니다. 어른들이 MBTI 유형을 궁금해하는 것처럼, 양육의 세계에선 아이의 기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기질에 따라 양육이나 훈육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일 겁니다. 특히 낯가림이 심하고 자주 우는 아기를 키우는 양육자들은 까다로운 아이 기질 때문에 힘들기도 하지만, 걱정도 많습니다. 내가 아이를 잘못 키우는 건 아닌지, 아이가 커서도 까탈스러운 성격을 갖게 될지 걱정이 앞서는 거겠죠.
☝『성격의 발견』은 어떤 책인가
제롬 케이건의 『성격의 발견』은 20년에 걸친 연구를 통해 기질의 비밀과 성격 형성의 과정을 밝힌 책입니다. 하버드대 심리학과 석좌교수인 제롬 케이건은 미국 심리학회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 30인’에 꼽히는 인물입니다. 기질이란 개념을 처음으로 확립한 심리학 대가죠. 양육서에서 흔히 말하는 ‘순한 기질, 까다로운 기질, 느린 기질’의 분류가 제롬 케이건의 연구에서 뻗어 나온 가지 중 하나입니다.
그의 연구는 발달심리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전까지 전문가들은 아이의 성격을 결정하는 게 ‘가정환경과 양육자의 태도’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롬 케이건은 여기에 ‘기질’이라는 중요 변수를 발굴해낸 거죠.
그에 따르면 기질은 한마디로 천성입니다. 인간은 저마다 유전적으로 형성된 기질을 갖고 태어난다는 겁니다. 타고난 것이라 외모처럼 바꿀 수가 없다고 합니다. 저자의 연구에 따르면 생후 4개월께 아기에게서 발견된 기질은 성인이 된 후의 성격과 직업 선택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만큼 기질이 개인의 행동과 선택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기질 위에 후천적인 삶의 환경과 경험이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게 성격이라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우리가 이 책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기질은 못 고쳐도 성격은 바꿀 수 있다’는 점일 겁니다. 그렇다면 양육자들이 이 책을 읽고 할 수 있는 일도 분명해 보입니다. 아이의 기질을 파악해 장점과 잠재력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성격 발달을 돕는 일이겠죠.
☝기질의 비밀, 편도체에 있다
성격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질이 무엇인지부터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기질의 사전적 의미는 ‘자극에 대한 민감성이나 특정한 유형의 정서적 반응을 보여주는 개인의 성격적 소질’입니다. 쉽게 말하면 영유아들의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롬 케이건은 비슷한 양육 환경에서 태어난 생후 16주(4개월) 아기 450명 이상을 대상으로 기질적 편향에 대한 연구를 실시했습니다. 아기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무려 20년간 기질과 성격의 변화를 찾아내는 대형 프로젝트였죠.
그는 실험실에 온 아기들에게 낯선 인형을 보여주고 스피커로 특정한 소리를 들려줬습니다. 또 면봉에 알코올을 묻혀 아기의 코앞에 대고 냄새를 풍기기도 했어요. 낯선 광경을 맞닥뜨린 아기들은 저마다 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어떤 아기는 새로운 상황을 즐기듯 옹알거리며 웃었고, 어떤 아기는 팔다리를 흔들고 몸을 비틀며 괴롭게 울었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할까요. 답은 ‘편도체’에 있었습니다. 편도체는 위험으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하기 위한 생리적 반응을 일으키는 두뇌 기관이에요. 예컨대 낙엽 더미 아래에서 뱀을 발견했을 때 공포감을 느끼고 도망가도록 하는 게 바로 편도체의 역할입니다.
실험에서 몸을 비틀며 울음을 터뜨리는 아기는 예민한 편도체를 갖고 태어났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작은 자극에도 편도체가 과잉반응을 해 운 것이었죠. 저자는 이처럼 외부 자극에 대한 편도체의 반응 정도에 따라 기질을 크게 ‘고반응성’ ‘저반응성’ 두 가지로 나눴습니다.
저자는 특정 기질적 편향이 성장 과정에서 고착화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첫 실험에서 울고 불편함을 표현한 고반응성 아기들은 학창 시절에도 수줍음이 많고, 자신감 없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반대로 저반응성이었던 아이는 즐겁게 인터뷰를 하고, 소리를 지르고, 실험관에게 서슴없이 다가갔습니다. 고반응성 아이가 저반응성 기질로 바뀌는 경우는 흔치 않았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고요.
이런 기질은 삶에서 걱정거리부터 다르게 만들었습니다. 고반응성 아이들은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경험, 지하철 타기, 낯선 도시로의 여행 등 아주 일상적인 경험을 앞두고도 지나치게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반면에 저반응성 아이들은 시험 성적이나 어떤 대회에서 실력을 잘 발휘할지 걱정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기질적 편향의 차이가 훗날 직업을 결정하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는 겁니다. 실험 그룹에서 생후 첫 3년간 가장 겁 많고 소심했던 4명의 아이는 안정적인 직업인 ‘음악교사·물리학자·생물학자·심리학자’를 택했습니다. 반면에 생후 첫 3년간 가장 겁이 없던 3명의 아이는 ‘축구팀 코치, 기업가, 자영업 엔지니어’가 됐습니다. 모두 불확실성이 크고 도전하는 직업이었습니다.
☝고반응성 아이와 저반응성 아이 대하는 법
기질 차이는 좋고 나쁜 가치 평가의 개념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특징일 뿐이죠. 고반응성 아이는 도덕적인 신념이 강하고 신중하지만, 불안감을 더 자주 느끼고 예민합니다. 저반응성 아이는 사교적이고 용감하지만,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거나 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더 높습니다.
각 기질에는 장단점이 공존하는데, 부모의 태도가 이를 강화시키거나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물론 타고난 기질을 바꿀 수는 없고 발현 양상을 다소 조정하는 정도입니다. 내 아이의 장점을 강화하고 약점을 보완하는 방법은 뭘까요.
☝가정·환경이 성격에 미치는 영향
하나의 성격은 아주 가는 흑백의 실로 짜인 회색 태피스트리(색실로 그림을 짜 넣은 직물)와 비슷하다. 태피스트리는 기질, 흑백의 실은 삶의 경험이다. p. 33
저자는 성격이 ‘완성된 그림’이라면 기질은 ‘첫 번째 그은 붓 자국’이라고 표현해요. 기질은 ‘말이 많거나, 과묵하거나, 예민하거나, 무기력하거나, 웃음이 많은’ 등 타고난 성향이고, 성격은 개인이 겪어온 경험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죠. 성격이란 장기적으로 완성되는 개인의 특질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경험의 요소는 가족‧문화‧역사‧민족 등 수없이 많습니다. 그중 가정과 환경에서 성격에 영향을 미치는 몇 가지 보편적인 요소를 소개합니다.
①부모의 특성
아이들은 부모와 자신을 동일시합니다. 자신이 엄마와 아빠로부터 만들어졌기 때문에 부모와 자기 사이에 공유하는 요소가 있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아채죠. 이 생각이 점차 발전하면 ‘부모’와 ‘나’는 하나의 범주라고 여기게 돼요.
부모의 성격이나 재능‧직업 등이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면 아이는 자신도 그렇게 될 잠재력이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믿게 됩니다. 이는 자신감과 쾌활한 성격으로 연결돼요. 나에게 좋은 자질이 많다는 생각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잠재우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부모가 알코올의존증·폭력성 등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여겨지는 특성을 갖고 있다면 아이는 수치심을 느끼고 움츠러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②성별
사회에서 통용되는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이 무엇인지도 성격에 영향을 미치죠. 보편적으로 남자아이들은 강하고 용감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는 요구를 느끼며 자랍니다. 여자아이들은 친절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다정해야 한다고 믿도록 사회화되고요.
③태어난 순서
형제 관계 또한 아이들의 감정과 태도, 행동에 영향을 미쳐요. 보통의 첫째 아이들은 권위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고, 학업에 대한 부모의 요구도 흔쾌히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특히 엄마와의 연대가 돈독합니다. 엄마가 처음 얻은 아이로, 지극한 사랑을 쏟기 때문이죠.
둘째 아이는 첫째보다 노력을 덜 하고, 첫째가 받는 관심과 특권을 질투하며 자라곤 합니다. 창의성과 도전이 필요한 직종인 작가‧예술가 같은 직종에 이끌리는 비율이 높고요. 과학자 중에서도 기존의 견해에 도전해 새로운 이론을 만들고 지지하는 이는 동생으로 태어났을 확률이 더 높다고 하네요.
자녀가 셋 이상 있는 가정에서는 중간에 끼인 자녀가 심리적으로 가장 힘들게 성장해요. 첫째와 막내는 각기 다른 이유로 양육자에게 관심을 받지만, 자신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춘기 청소년 중 자해 행동을 하는 아이들은 첫째와 막내 사이에 끼인 자녀인 경우가 가장 많았습니다.
④사는 지역
대도시‧소도시 중 어디에 사는지도 아이의 성격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저자는 각 분야의 영향력 있는 인물을 선정하는 ‘후즈후 인명사전’에 실린 남녀 중에는 작은 마을에서 산 이들의 수가 대도시에서 산 사람들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을 전합니다.
대도시에서는 온갖 문화생활을 편하게 누릴 수 있고 큰 도서관과 좋은 학교가 있습니다. 자기계발을 할 기회가 소도시보다 훨씬 많고요. 그런데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아이들은 동년배의 다른 아이들과 자신의 지적 능력, 매력, 체육 실력, 성격 등을 계속 비교하며 자라기 때문입니다.
대도시에 사는 아이 중에는 주변에 뛰어난 아이들과 비교하며 스스로 ‘나는 특별하지 않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반면에 소도시에서 태어난 재능 있는 아이는 ‘나는 누구보다 특별하고 뛰어난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특정 분야에서 학교나 마을 대표로 선정될 확률이 대도시에 사는 아이들보다 훨씬 높았기 때문입니다. 자기 확신의 차이는 자신감으로 이어졌고, 성장 후 일을 하는 데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hello, parents 읽기 가이드
이 책은 양육서보다 학술서에 가깝습니다. 개인의 성격이 어떻게 완성되는지에 대해 다양한 연구 결과로 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각 기질에 대한 양육 솔루션을 기대하는 독자라면 실망할 수 있어요. 책에는 그의 이론을 뒷받침할 수 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할 뿐이거든요.
그는 이 연구의 근본적인 한계도 고백합니다. 성격이란 개인의 답변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서 변동성이 높다는 이유입니다. 무결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인간의 모든 행동을 분석해야 하는데,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까요. 개인의 행동이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도 변수 중 하나입니다. 예컨대 길에 지폐가 떨어져 있을 때 ‘주변에 아무도 없는 상황’과 ‘군중이 많은 상황’에서 나타나는 행동은 분명 다를 겁니다.
저자는 인간이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문을 활짝 열어둡니다. 성격이 기질과 환경, 경험의 조합으로 형성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극복할 수 있는 요소일 뿐, 인간의 장래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요.
성인이 된 사람들의 성격은 모두 기질과 양식과 그 개인의 가족, 문화, 역사적 시간 속에서 겪은 경험의 융합물이다. p. 91
다소 허무한 결론이지만, 저는 이 책을 읽고 죄책감을 덜 수 있었습니다. 저희 집에 있는 4세 어린이는 낯을 많이 가리고 새로운 것에 적응하는 데 애를 먹는 편인데요. 그런 아이를 볼 때마다 ‘내가 일을 하느라 다양한 활동을 시켜주지 못했기 때문인가’ 자책하곤 했거든요.
양육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민감한 편도체를 가지고 태어난 탓이라니 아이를 바라보는 마음이 한결 편해집니다. 제롬 케이건의 주장을 종합하면 한 사람의 삶은 결코 특정한 몇 가지 문제로 좌지우지되지 않습니다. 인간이라는 복잡계를 만드는 데 있어 양육자의 태도는 수없이 다양한 요소 중 하나일 뿐이에요. 우리 자책에 쓰는 에너지만큼은 절약하기로 합시다.
성소영 객원기자 ssoy419@gmail.com,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변소라 디자이너 byun.so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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