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 젊은 열정, 오영수·남경주
배우 오영수(77)는 지난해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오일남 역을 연기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 것. 전 세계에 ‘깐부 신드롬’을 퍼뜨리더니 <2022년 제79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TV 부문 남우조연상을 받는 영광도 안았다.
오영수가 빛을 본 것은 연기자의 길을 걸은 지 58년 만이었다. 그는 1963년부터 극단에서 활동했으며, 200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1979년 ‘동아연극상’ 남자연기상, 1994년 ‘백상예술대상’ 남자연기상, 2000년 ‘한국연극협회’ 연기상을 받은 바 있다. 또한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포함한 다수의 작품에 스님으로 출연해 ‘스님 전문 배우’로 불리기도 했다.
배우로서 오영수의 강점은 자신이 맡은 캐릭터와 혼연일체가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연기한 캐릭터를 기억한다. 이는 오영수가 어떤 역할을 부여받았을 때 감히 예상할 수 없을 정도의 고민과 연습을 거듭한다는 뜻일 것이다. 더불어 그는 선과 악을 오가는 마스크와 연기력을 지녀 폭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오영수는 <오징어 게임> 이후 대중의 마음을 또 한 번 사로잡았다. 배우를 넘어선 사람으로서의 매력 덕분이었다. 그는 50여 년 만에 주목받았지만 들뜨지 않았다. 모든 인터뷰 제의도 거절하고 오직 <놀면 뭐하니?> 출연만 승낙했다. 인터뷰에 응한 오영수는 격조 높은 태도를 보여줬으며, 그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에는 인생철학이 녹아 있었다.
“산속에 꽃이 있으면 젊을 때는 꺾어 가지만, 내 나이쯤 되면 그냥 놓고 온다. 그리고 다시 가서 본다. 그게 인생과 마찬가지다. 있는 그대로 놔두는 것. 그게 쉽지는 않다.” “진정한 승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애쓰면서 내공을 가지고 어떤 경지에 이르려고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승자가 아닌가?” 같은 그의 말은 깊은 울림을 주면서 어록으로 남았다. 또한 오영수는 떴다고 해서 자신이 지켜온 무대를 떠나지 않았다. <오징어 게임> 이후 그의 차기작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는데, 오영수는 무대로 돌아가는 것을 택했다. 그의 차기작은 연극 <라스트 세션>이었다. “배우로서 연극무대는 내 삶의 목적이고 의미”라고 말한 오영수는 골든 글로브에서 상을 받던 날에도 흔들리지 않고 연극 연습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 연극 <러브레터>의 배우 오영수 ⓒ파크컴퍼니
- 뮤지컬 <위키드>의 배우 남경주 ⓒ에스앤코
뮤지컬에서 활약을 펼치는 시니어 배우는 단연 남경주(58)가 아닐까. 남경주는 자타 공인 대한민국 대표 뮤지컬 배우이면서, 현재 활동하는 뮤지컬 배우들이 롤 모델로 꼽는 배우이다. 특히 그는 ‘뮤지컬 1세대 배우’로 통하는데, 정작 자신은 “뮤지컬을 최초로 하셨던 분들이 1세대이고, 저는 1.5세대”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뮤지컬 대중화 1세대라고 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비유해 보자면 저는 밭을 일궜고, 현재 후배들이 비옥해진 토양에서 열매를 거두고 있다.”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남경주에게는 무명 시절이 없었다. 그는 서울예술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1984년 뮤지컬 <포기와 베스>를 통해 본격적으로 뮤지컬 배우가 됐다. 꽃미남 외모에 연기력까지 겸비한 배우가 인기몰이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1990년대 뮤지컬 배우로는 이례적으로 팬클럽이 생겼고, 남경주는 여느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구가했다. 특히 그는 <아가씨와 건달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그리스> 등을 통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남경주는 젊은 나이에 성공했지만, 자만하거나 오만해지지 않았다. 다만 나이를 먹으면서 캐스팅에 제약이 온다는 것을 실감했고, 40대 진입을 앞두고 큰 슬럼프를 겪었다. 주인공만 하던 사람에게 조연 역할 제의가 들어오니 뼈아픈 좌절감을 느낀 것. 그때 그에게 찾아온 작품이 <아이 러브 유>였다. 남경주는 첫 시즌 594회를 포함해 2009년 앙코르까지, 총 830회 무대에 올랐다. 그의 진가가 재확인됐으며, 스스로도 인생작으로 꼽는 작품이다.
<아이 러브 유>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남경주는 성실한 배우다. 그는 미국 유학을 간 2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무대에 올랐다. 현재까지 무려 4000회 이상 무대에 선 것으로 파악된다. 올해만 놓고 봐도 <썸씽로튼> <넥스트 투 노멀> <서편제> <원더티켓> <세종, 1446> 등에 출연한다. 그럼에도 남경주는 지치지 않는다. 벌써 무대에 선 지도 40년인데 변함없는 에너지를 자랑한다. 그 비결을 묻자 그는 “저는 단지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할 뿐이다.”라고 답하며 밝게 웃었다. 더불어 남경주는 대선배 배우로서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2014년부터 교단에 선 그는 현재 홍익대학교 공연예술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남경주는 “뮤지컬 배우는 노래·연기·춤 3박자를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거기에 더해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저는 학생들에게 배우가 되기 전에 인간이 되라고 얘기한다.”면서 “저도 공인으로서 책임, 의무감을 갖고 후배한테 좋은 본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뮤지컬배우의 롤 모델’이라는 영예로운 타이틀은 괜히 생긴 것이 아니었다.
밀라논나까지, 문화예술계 시니어 바람
그동안 시니어가 주인공인 연극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보통 노인의 외로움 또는 가족에 관한 연극이 많았다. 각각 우정과 사랑에 관한 연극 <아트>와 <러브레터>의 시니어 버전이 생겼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시니어의 삶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그들의 인생 족적과 얘기는 귀감이 되고 있다. 그 대표 주자로 밀라논나(장명숙, 70)를 꼽고 싶다.
밀라논나는 ‘2030세대의 롤 모델’로 통하는 시니어다. 밀라논나는 ‘밀라노’와 이탈리아어로 할머니를 뜻하는 ‘논나’가 합쳐진 말이다. 즉 ‘밀라노 할머니’라는 뜻인데, 밀라논나는 그동안 우리가 알던 할머니와는 차별화된다. 당당하고 멋진 인생을 사는 어른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
밀라논나는 1978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패션 디자인 유학을 한 최초의 한국인이다. 유명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를 한국에 들여오는 명품 바이어로 활동했다. 40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대한민국에 이탈리아의 패션을 전파한 그는 교류 공헌을 인정받아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명예 기사’ 작위를 받기도 했다. 또한 밀라논나는 무대의상 디자이너와 교수로도 활약했다.
밀라논나가 유명해진 것은 2019년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면서다. 한 달도 안 되어서 구독자 10만 명을 돌파했고, 현재는 구독자가 약 95만 명으로 100만 명을 향해 가고 있다. 밀라논나는 아쉽게도 지난 7월 22일 유튜브 활동 잠정 중단을 알렸다. 더불어 그는 지난해 에세이집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를 펴내 화제를 더하기도 했다. 밀라논나는 이탈리아 유학이라는 길을 개척한 사람이다. 그는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후회하지 말고 행하라고 말하고, 내 인생 살기도 바쁜데 남 눈치 보지 말라고 조언한다. “기왕 태어났으면 이 사회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존재로 살다가 죽어야 하잖아.”라는 말도 남긴 밀라논나는 ‘말하는 대로’의 삶을 실천한다.
현재 문화예술계에서 불고 있는 시니어 열풍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시니어가 주인공인 작품은 더욱 다양해질 것이고, 오영수·남경주처럼 시니어 배우들이 연기할 수 있는 장도 확대될 것이다. 밀라논나처럼 멋진 시니어가 계속해서 발굴되고 관심을 받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그들의 삶 자체가 콘텐츠이기 때문에 우리가 듣게 될 이야기도 무궁무진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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