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무한정 희생적이시지만 아버지에게는 함부로 하는 어머니

2023.01.16. 오전 6:00
by 철학커뮤니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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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내용>

25세 성인이고 부모님 사이가 안좋으신데 어느 한 쪽만의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제가 이룬 것은 모두 어머니 덕분이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또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함부로 하시고 제가 아버지와 대화하는 것조차 싫어하시는 것은 너무 안타깝고 속이 미어집니다. 저한테는 무한정 약해지시는 어머니가 아버지에게는 그러시는 게 너무 힘이 듭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부모님께서 돌아가시면 많이 후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정신분석 비슷한 상담에서 부모님은 불행하게 두라는 말까지 듣기는 했습니다. 저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질문자님께 드리는 편지>

그동안 스스로도 다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마음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부모님 사이가 안좋은 것은 자녀 입장에서는 몸과 마음이 둘로 나뉘는 고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체적인 질문의 흐름으로 보았을 때 남자분이신 것 같아요. 아들의 경우에 아버지에게 함부로 하는 어머니를 보는 것은 더욱 힘이 듭니다. 본인조차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다른 사람이 내 아버지에게 함부로 하는 것은 용납하기가 힘들지요. 아무래도 아버지와 같은 성별이기에 아버지에게 동일시가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들 입장에서는 아버지에게 함부로 하는 어머니를 보면 내 아내가 나에게 함부로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나에게는 무한정 희생해주시는 어머니가 내가 동일시하는 아버지에게는 함부로 대하니 어머니에 대한 마음이 이중적이 될 수밖에 없지요.. 그러니 얼마나 마음이 힘드시겠어요... 마음이 두 갈래가 되는 일이 참 고통스럽지요. 물론 양가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는 정상적이기는 합니다. 우리 모두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른 한편으로 미운 감정도 느낍니다. 그렇지만 지금 느끼시는 양가감정은 해리를 일으킨다 해도 이해가 될 정도의 극단적인 양가감정이기는 합니다. 일단 저는 지금의 아드님의 마음을 어머니에게 표현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얼마나 어머니에게 감사한지와 그렇지만 또 아버지에게 그러시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말입니다. 물론 어머니께서 이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정상적인 소통이 어려울 정도로 감정적이시다고 여겨집니다. 당장 아버지와 대화하는 것조차 싫어하신다니 말입니다. 

그러나 진지하게 본인의 입장을 얘기하셔서 ‘아버지를 대하는 어머니의 태도’와 ‘아버지와 대화하는 것에 대한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리도록 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아들이 너무 고통스럽다는 것을 잘 전달하면 어머니께서도 생각이 조금 달라지실 것입니다. 어머니께서 지금 별거를 하시는 것도 아니고 여하간 동거를 하고 계시다면 어머니의 태도 완화는 기대해볼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여기서 가장 중요한 조건은 설사 아버지와 다정하게 대화할지라도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감사가 훨씬 클 것임을 분명히 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들이 아버지와 대화하는 것조차 싫어하신다는 것을 보면 어머니께서 ‘가정생활과 자녀 양육에서의 기여’라는 부분에서 충분히 인정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합니다. 

어머니께서 아들이 아버지와 대화하는 것조차 싫어하신다는 걸로 미루어 보면 어머니는 감정적이시고 이성적인 대화가 잘 안되는 분일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이성적인 대화가 가능하실 분이면 적어도 아들이 아버지와 대화하는 것까지 대놓고 싫어하지는 않으실 테니까요. 설사 싫으시다 하더라도 그 싫음을 숨겨야 한다는 정도의 판단은 하실 수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그렇기에 더욱더 어머니의 감정에 주목하실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만약에 아버지께서 생활력이 없으셔셔 어머니가 생활도 이끌어가시고 자녀 양육도 시간과 정성을 들여서 하셨다면 어머니로서는 너무 힘들게 사셨을 것이고 본인의 인생이 희생당했다는 느낌이 매우 강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남편(아버님)의 인정을 못받은 것에 대한 답답함이 크실 것이라 예측됩니다. 그래서 자녀분이 힘드시더라도 어머니의 공로에 대한 인정을 과장될 정도로 해주시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가 아무리 아버지와 다정하게 대화를 한다해도 내가 이만큼 된 것과 이 가정이 유지된 것은 어머니 덕분이고 나는 그것을 죽어도 잊지 않을 것이다’라는 싸인을 어머니에게 분명히 드려야 어머니께서 질문자님이 아버지와 대화하는 것에 대한 태도를 유연하게 하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머니에게는 어머니 인생을 너무 힘들게 한 남편일지 몰라도 질문하신 분에게는 본능적으로 피가 땡기는 아버지임을 어머니께 잘 말씀드리면 좋겠습니다. 부모님을 중재하려 들면 어머니에게는 아버지 편이라는 인상을 주고 아버지에게는 어머니 편이라는 인상을 줄 우려가 높습니다. 현 상황은 자녀의 중재로 무언가가 달라질 수 있는 상황은 아닌 듯합니다. 질문하신 분의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 더 중요해보입니다. 몇 십년간의 묵은 부부간의 갈등이 몇 마디 중재로 해결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드려야 할 싸인은 분명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버지에게는 ‘지금의 상황에 아버지의 잘못이 있기는 하지만 전적으로 아버지의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어머니가 희생을 많이 하신 것은 사실이니 그 부분은 아버지도 인정을 해주셨으면 좋겠다’하는 메시지를 주시고, 어머니에게는 ‘어머니의 희생 덕분에 내가 이만큼 되었고 이 부분은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불행한데 내가 행복할 수는 없으니 아들의 행복을 원한다면 아버지에 대한 태도를 조금은 누그러뜨려주셨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잘 전하면 좋겠습니다. 

두 분은 자녀를 위해 그 지탱하기 어려운 부부지간을 깨지 않고 버텨오셨습니다. 자녀로서 그러한 측면을 잘 인정해주시고 어머니 아버지 두 분의 행복한 여생을 바라는 마음을 잘 전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마음을 전하지만 이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수 있음을 받아들이고 그저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겠다는 마음을 가지시면 좋겠습니다. 결과에 대해서는 마음을 비우고 나로서 할 수 있는 것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시는 게 좋다고 생각됩니다. 

그동안 마음이 둘로 나뉘는 고통 중에도 어머니의 희생을 생각하며 어려운 공부를 해오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지금까지도 잘 버텨 오셨으니 앞으로도 잘 해나가실 것입니다. 사람의 인생에 모든 복이 있지는 않더라구요. 가정의 정서적 환경이 좋지는 않으셨지만 그 경험으로 인해 인간을 많이 알게 되고 배우셨을 것입니다. 지금의 그 경험에서 좋은 영향을 받는 것에 더 관심을 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어려움을 그만큼 헤쳐 오셨으니 이 문제에 대한 원망에 빠져 있지 않으시면 앞으로 좋은 일이 많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마음이 많이 편해지시기를 기원합니다. 

철학커뮤니케이터 박은미

건국대학교 강의교수와 세종대학교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는 일반인을 위한 철학저서 집필과 강의에 전념하고 있다. 철학적 성찰력의 힘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것, 삶에 닿아있는 철학을 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이다. 일반인과 철학 사이에 다리를 놓는 철학커뮤니케이터로서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돌보는 데 도움이 되는 글을 올리고자 한다. 저서로 <진짜 나로 살 때 행복하다> <삶이 불쾌한가: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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